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살고 있다. 공간이라는 곳에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생활한다. 전망 좋고 넓은 집은 우리의 생활뿐만 아니라 기분마저 좋게 만든다. 세련된 최신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업무와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지도 모른다. 건축은 단순히 어떤 공간을 짓는 것을 넘어, 우리의 감정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다.
모든 건축이 긍정적인 감정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소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불쾌하고 불안함을 주기 위해 건축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건물의 목적성이나 특수성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야기하곤 한다. 이를테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병원의 경우,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특수성이 불안함과 불편한 감정을 야기해 기피하고 싶은 장소가 될 수 있다. 오롯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장소는 어떤가? 타인의 죽음을 슬퍼함과 동시에 그를 기억해야 하며, 스스로 감정을 추스리는 모든 과정을 한 곳에서 해결해야 하는 장례식장 또한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편한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건축의 방식에 따라 건물에서 느껴지는 바가 다르듯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장소도 어떻게 지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아래 소개할 사례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건축이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치료와 환자의 마음을 동시에 다루는 치과, Clinic NK in Aichi, Japan
장례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다, New Funeral Center designed by hofmandujardin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례식 특유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이 병원에서 진행되는 한국의 장례식은 병원의 분위기와 맞물려 시종일관 가라앉은 분위기다. 절차가 다를 뿐 분위기 면에서는 서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채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는 엄숙 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장례식 내내 고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죽음 앞에서 죽은 이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슬픈 분위기에 같이 침잠되어 말을 아끼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한 건축 스튜디오 hofmandujardin는 장례식장을 무조건 가라앉고, 슬픈 감정을 위한 곳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같다. 그 대신 고인에 대한 아름다운 장례, 그들의 지난 기억을 추억할 수 있는 곳으로 해석했다. 장례식장은 세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가운데 고인의 관을 기점으로 한쪽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 또 다른 한 쪽은 고인의 지난 삶을 기억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실이 있다. 건물 중앙에서는 관을 바라보고 추모를 할 수 있으며, 멀티미디어실에서는 고인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목적에 따른 구분이지만 감정에 따른 공간 구분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장례의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고인의 생전 영상을 보고 슬픔 외에도 감사함, 즐거웠던 기억 등을 되살릴 수 있으며 그 감정을 바탕으로 중앙 추모 공간에서 떠나는 고인을 한 결 가벼운 마음으로 배웅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을 나누는 키워드 감정, 건축이 아닌 비즈니스에 적용 가능 할까
위 사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공간 설계가 사용목적 외에도, 감정의 분리를 위해 구분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치과나 장례식장은 하나의 공간을 용도로만 구분하여 감정이 뒤섞이는 것에 대한 배려가 다소 부족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두 건물은 본래 쓰임새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용자의 감정을 바탕으로 공간을 구분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최소화했다. 공간을 나누면서 사용자의 감정 또한 나눈 것이다.
결국 공간을 나누는 것은 해석의 차이다. 위 사례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공간을 분리하고 구성했지만, 감정을 테마로 공간을 구분 짓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도 있다. 이미 감정을 테마로 책을 분류하는 책방과 미술관이 있지만 다른 비즈니스에서도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물리적인 공간인 쇼핑몰을 남성 패션/여성 패션 등으로 구분짓기 보다는 감정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떨까? 행복, 사랑, 즐거움 등으로 구분지어 해당 테마에 관련된 제품이나 의류를 제공하는 것이다. 온라인을 또 다른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를 감정 테마로 구성하는 것에 적용할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의 경우, 자극적인 기사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기사의 분류를 사회, 경제 외에 불안, 안타까움, 행복, 훈훈 등과 같이 분류하는 것도 기존 자극적인 기사, 낚시성 기사가 만연한 곳이어서 기피하게 되는 공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처럼 건축 또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에 잠기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할 때 사람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함께 가능하다면, 불행에 잠기는 일보다는 행복에 조금 더 가까운 공간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